1492년에 일어난 세 가지 일

1492 · 스페인 그라나다

1492년 1월,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 항복했다. 780년 만이었다.

같은 해 3월, 유대인에게 개종하거나 떠나라는 칙령이 내려졌다. 수만 명이 반도를 떠났고 상당수가 오스만 영토로 갔다 — 오스만 편에서 테살로니키가 유대인이 다수인 도시가 되는 대목이 바로 이 흐름이다.

같은 해 8월, 세 척의 배가 서쪽으로 떠났다. 10월에 카리브의 한 섬에 닿았다.

세 사건을 나란히 놓는 이유가 있다. 흔히 첫 번째는 국토 회복으로, 두 번째는 종교 박해로, 세 번째는 대항해의 시작으로 따로 배운다. 그런데 당대의 논리에서 셋은 하나의 방향이었다 — 안을 하나의 신앙으로 만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

그리고 조건이 있었다. 780년의 전쟁이 끝나면서 전쟁으로 살아온 계층이 갈 곳을 잃었다. 하급 귀족과 병사들, 땅과 명예를 얻으려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대서양 너머로 향했고, 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일의 성격 상당 부분이 여기서 설명된다. 정복은 국가가 계획한 사업이라기보다 왕의 허가를 받은 사적 원정에 가까웠고, 성공하면 왕이 사후에 인정하는 방식이었다.

2년 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지도 위에 세로선 하나를 긋고 세계를 나누기로 합의했다. 아직 가 보지도 않은 땅이었다. 그 선의 오른쪽에 걸린 브라질이 포르투갈어를 쓰게 된 것이 그 결과다.

지도 위에 선을 긋는 일과 그 선이 실제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일 사이에는 얼마나 먼 거리가 있을까? 그리고 그 거리는 왜 그렇게 자주 좁혀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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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페인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