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1년, 21년에 걸친 전쟁에서 스웨덴을 꺾고 발트해의 출구를 얻은 직후 차르는 임페라토르를 칭했다. 라틴어에서 온 말이며, 유럽의 언어로 자기 지위를 선언한 것이다.
그 전후로 이루어진 개혁의 목록은 길다. 관료제를 등급으로 재편하고, 상비군과 해군을 만들고, 귀족에게 수염을 깎고 유럽식 복장을 하게 하고, 달력을 바꾸고, 학교와 아카데미를 세웠다. 새 수도를 늪지대에 세워 그곳으로 옮겼다.
이 개혁은 흔히 근대화의 성공 사례로 이야기된다. 함께 적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비용은 아래에서 냈다. 새 수도 건설에는 각지에서 강제로 동원된 농민이 대규모로 투입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전쟁과 건설을 대려고 세금이 크게 늘었으며, 인두세가 도입되면서 농민을 토지에 묶어 두는 힘이 오히려 강해졌다.
둘째, 농노제는 이 시기에 약해지지 않고 굳어졌다. 유럽의 제도를 들여오면서 유럽이 벗어나고 있던 예속 구조는 그대로 두거나 강화한 것이다. 농노 해방은 이로부터 140년 뒤에야 이루어진다.
셋째, 개혁의 방향을 위에서 정하고 반대를 힘으로 눌렀다. 이 형태는 이후에도 반복된다 — 오스만의 탄지마트, 청의 개혁, 그리고 메이지의 일본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구조가 나타난다. 19세기 후반 세계의 개혁은 대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그리고 오래된 질문이 여기서 시작된다. 러시아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이 물음은 이후 200년 동안 러시아 지식인들이 되풀이해 다투는 주제가 되며, 자기 정체성을 밖에서 찾을 것인가 안에서 찾을 것인가라는 형태로 반복된다.
다른 곳의 제도를 들여와 나라를 바꾸려 할 때, 무엇을 들여오고 무엇을 남길지는 누가 정하게 될까? 그리고 그 비용은 대개 누가 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