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년 무렵 상인 가문이 고용한 카자크 부대가 우랄 너머의 칸국을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60년이 채 지나기 전인 1639년, 러시아인이 오호츠크 해안에 닿는다. 유라시아 북부를 가로지른 거리다.
이 속도를 만든 것은 군대가 아니라 모피였다. 검은담비 가죽은 당대 유럽에서 대단히 비쌌고, 국고의 큰 몫이 여기서 나왔다. 방식은 단순했다. 강을 따라 올라가 요새를 세우고, 그 지역 부족에게 해마다 정해진 수의 모피를 공납으로 물리고, 이행을 보증하기 위해 유력자의 가족을 볼모로 잡았다.
거부하면 토벌이 뒤따랐다. 사냥터가 고갈되면 더 동쪽으로 갔고,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에 유럽에서 건너온 전염병이 겹쳐 여러 지역에서 원주민 인구가 크게 줄었다. 지역마다 편차가 크고 추정치의 폭도 넓어 하나의 숫자로 말할 수는 없지만, 큰 감소가 있었다는 점은 다투어지지 않는다.
이 지도에 시베리아 원주민의 자리를 옅게라도 표시해 둔 것은 그래서다. 지도에서 색이 빠르게 번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빈 땅이 채워지는 장면을 상상하기 쉽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같은 시기 다른 제국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청은 준가르를, 무굴은 데칸을, 영국은 인도를 향하고 있었다. 러시아만 유별났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확장을 「진출」이나 「개척」이라는 말로 부르는 순간, 그 땅에 이미 있던 사람들이 문장에서 사라진다.
동쪽 끝에 닿은 뒤 러시아는 아무르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청과 부딪친다. 1689년 두 제국이 국경을 정하는 조약을 맺는데, 러시아는 아무르에서 물러나는 대신 교역로를 얻었다. 그 땅을 다시 가져오는 데는 170년이 걸린다.
어떤 확장을 「개척」이라 부르고 어떤 확장을 「침략」이라 부르는지, 그 기준은 누가 정해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