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이 사라진 뒤로도 977년, 로마는 계속 있었다. 우리가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는 그 나라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그들의 이름은 로마였고, 자신들을 로마인이라 불렀다. "비잔티움"은 이 나라가 사라지고 한 세기쯤 뒤에 서유럽 학자가 붙인 이름이다.
왜 다른 이름이 필요했을까. 서유럽에서는 이미 다른 나라가 로마의 이름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성 로마 제국이 그렇고, 로마 교회가 그렇다. 동쪽의 그 나라를 로마라고 부르면 서쪽의 정통성 주장이 흔들린다. 이름을 붙이는 쪽이 역사를 규정한다.
1453년 성벽이 뚫리며 마지막 황제가 전사하고 제국이 끝났다. 그런데 그 도시를 차지한 오스만의 술탄은 곧 "로마의 카이사르"라는 칭호를 썼다. 러시아의 군주는 차르(Tsar)라 불렸고 독일의 황제는 카이저(Kaiser)라 불렸다 — 둘 다 카이사르에서 온 말이다.
제국이 사라진 뒤 천 년 동안 유럽의 권력자들은 로마의 이름을 빌려 자기 정통성을 세웠다. 페르시아 편의 마지막에서 물었던 것과 같은 이야기다. 왕조가 사라지는 것과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다른 일이다.
로마는 언제 끝난 것일까? 476년일까, 1453년일까, 아니면 그 이름으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 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