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는 476년을 서로마 멸망의 해로 적는다. 그런데 그 해에 실제로 벌어진 일은 게르만 출신 장군이 열여섯 살 황제를 폐위하고 황제의 표장을 동쪽 조정으로 보낸 것뿐이었다. 전투도 학살도 없었다. 당대인 대부분은 제국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마의 끝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었다. 세금이 걷히는 지역이 줄고, 군대의 상당 부분이 게르만 용병으로 채워지고, 실권이 황제가 아니라 군사령관에게 넘어가는 일이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476년은 그 과정 어딘가에 찍힌 편의상의 점이다.
게르만 왕국들도 로마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로마의 법을 쓰고 로마의 관직명을 쓰고 로마 교회의 신자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로마의 계승자로 여겼다. 무너진 것은 중앙 정부였지 로마적인 것 전체가 아니었다.
그리고 동쪽은 계속 있었다. 한 세대 뒤 유스티니아누스가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되찾아 지중해를 다시 하나로 만들었고, 로마법을 집대성했다. 되찾은 땅은 곧 대부분 빠져나갔지만 그 법전은 남아 오늘날 대륙법의 뿌리가 되었다.
한 나라의 끝을 하나의 연도로 적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