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90년 마라톤에서, 10년 뒤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군이 물러났다. 제국의 서쪽 확장이 멈춘 사건이다.
그런데 이 전쟁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은 헤로도토스를 비롯한 그리스 쪽 기록에서 나온다. 페르시아 쪽 기록은 남지 않았다. 왕의 비문에는 이 전쟁이 아예 언급되지 않는데, 제국 전체로 보면 서쪽 변방의 국지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 결과 이 전쟁은 오랫동안 "자유로운 시민 대 노예 같은 신민", "서양 대 동양"의 구도로 이야기되었다. 이 틀은 19세기 유럽에서 특히 강하게 굳었고,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사로 쓰이기도 했다.
사실관계를 바로잡자면 이렇다. 페르시아는 정복지의 종교와 관습을 인정했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만이 정치에 참여하는 사회였으며 노예제 위에 서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자유로웠는가는 그렇게 간단히 답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페르시아를 편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은 기록이 한쪽뿐일 때 우리가 무엇을 아는 것인지 물어보자는 이야기다. 이 시리즈가 다룰 제국들 대부분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한쪽의 기록만 남은 사건을 우리는 어디까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지 않은 기록의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