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퇴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1683 · 오스트리아 빈

1683년 오스만 군대가 빈을 포위했다가 폴란드 구원군에 크게 패했다. 이번에는 물러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반격이 이어졌고 1699년의 조약으로 헝가리를 통째로 내준다. 조약 문서로 대규모 영토를 넘긴 첫 사건이었다.

여기서부터 쇠퇴가 시작되었다고 흔히 말한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 1683년 이후로도 오스만은 200년 넘게 존속했고, 그중에는 러시아를 상대로 이긴 전쟁도 있었다. 「1683년부터 계속 기울었다」는 문장은 결과를 알고 난 뒤에 그린 매끄러운 선이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무렵 유럽의 군대는 화기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고, 그 변화를 뒷받침한 것은 세금을 걷고 상비군을 유지하는 재정 체계였다. 오스만은 앞서 나가던 자리에 머물렀고 뒤에 있던 쪽이 방식을 바꿨다.

중요한 것은 오스만이 그것을 몰랐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18세기 말부터 서구식 군대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기존 군단의 반발로 좌절했다가 결국 그 군단을 해체했다(1826). 1839년에는 신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고 종교에 상관없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하는 칙령이 나온다 — 탄지마트다. 1876년에는 헌법이 반포되고 의회가 열렸다.

그 헌법은 이듬해 정지되었다. 개혁은 재정 부담을 키워 외채를 낳았고, 1875년 제국은 사실상 채무 불이행에 빠져 유럽 채권단이 세입의 일부를 직접 관리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한 개혁이 종속을 앞당긴 셈이다.

오스만 헌법이 반포된 1876년, 조선은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한쪽은 헌법으로 다른 쪽은 개항으로 근대의 압력에 응답했다. 두 응답 모두 자기 힘으로 시작되었으나 두 곳 모두 결과를 스스로 정하지 못했다.

「유럽의 병자」라는 말은 그 시기 유럽이 붙인 이름이다. 그 이름으로 600년을 요약하면, 그중 300년 넘게 유럽이 두려워한 상대였다는 사실이 지워진다.

한 나라가 기울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나라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보게 된다. 그때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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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스만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