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의 지배층은 인구에서 압도적 소수였다.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은 일부였고, 제국의 사람 대부분은 힌두였다. 그 조건에서 어떻게 200년 넘게 통치가 유지되었는가는 이 편의 중심 질문이다.
세 번째 황제의 시대에 답의 윤곽이 나온다.
첫째, 1564년 비무슬림에게 물리던 인두세를 없앴다. 이슬람 법제의 오랜 관행을 깬 조치이며, 종교가 다른 신민을 세금으로 구분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둘째, 라지푸트 왕공들과 혼인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제국의 최고위 사령관 자리를 주었다. 힌두 왕공이 무슬림 황제의 장인이자 군단장이 되는 구조다. 정복한 쪽이 정복당한 쪽에게 지분을 나누어 준 것이며, 그 지분 때문에 지배가 유지되었다.
셋째, 관료를 등급으로 편성하고 봉급을 토지 수입으로 지급하는 체계를 세웠다. 그 명부에는 페르시아인·중앙아시아인·인도 무슬림·힌두가 함께 올랐다. 출신이 아니라 등급이 사람의 자리를 정했다.
넷째, 궁정에 여러 종교의 학자를 불러 토론하게 했다. 힌두교·자이나교·조로아스터교·기독교의 성직자가 함께 앉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뒷날 황제 개인을 중심으로 한 서약 집단도 만들어지는데, 이를 새로운 종교의 창설로 보기는 어렵고 측근의 충성 서약에 가깝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이것을 관용이라 부를 수는 있다. 다만 오늘의 세속주의와 같은 것으로 읽으면 정확하지 않다. 황제는 자신을 신성한 권위를 지닌 존재로 세웠고, 종교 간의 균형은 그 권위를 정당화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신념과 통치술은 여기서 분리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결과다. 지분을 나눈 100년 동안 제국은 커졌고, 그 지분을 거두기 시작한 뒤에 흔들렸다.
다수와 다른 쪽이 다수를 다스릴 때, 그 통치를 지탱하는 것은 힘일까 지분일까? 그리고 지분을 나누는 관용과 신념에서 나온 관용은 구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