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열린 길 위에서 오간 것들

1300 · 중국 베이징

전쟁이 잦아들자 초원길과 오아시스길이 하나의 질서 아래 놓였다. 상인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었고, 역참망이 그 이동을 뒷받침했다.

아랍과 페르시아의 천문학자가 중국에서 일했고 중국의 기술이 서쪽으로 갔다. 베네치아 상인의 여행기가 유럽에 아시아를 알렸다. 일 칸국에서 편찬된 역사서는 몽골 여러 갈래를 모두 다룬 최초의 세계사로 꼽힌다.

고려에도 이 길로 들어온 것들이 있다. 목화와 화약 제조법, 이슬람 천문학과 역법이 그렇다. 세계와 이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연결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 같은 시기 일본 원정에 쓸 배를 만드느라 백성의 부담은 극심했고, 공녀와 공물이 이어졌다. 길이 열린 대가를 지불한 쪽과 그 길로 이익을 본 쪽이 반드시 같지는 않았다.

1368년 원이 중국에서 밀려나 초원으로 돌아갔다. 100년이 채 못 되는 지배였다. 그러나 몰아낸 명도 행정과 군사 제도의 상당 부분을 원에서 물려받았다 — 몰아낸 상대의 방식을 이어받는 일은 역사에서 드물지 않다.

그리고 이름도 남았다. 차가타이 칸국이 갈라진 자리에서 일어난 티무르의 후손이 인도에 세운 제국의 이름이 무굴인데, 이는 몽골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

폭력으로 열린 길 위에서 오간 것들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얻은 것과 치른 대가를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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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몽골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