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년 몽골의 2차 침입이 시작되자 고려의 무신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초원의 기병이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는 판단이었고, 그 판단은 40년 가까이 유효했다.
결과만 보면 성취다. 고려는 왕조를 유지했다. 몽골이 정복한 곳 대부분에서 왕조 자체가 사라진 것과 비교하면 드문 결과다. 호라즘은 지워졌고, 바그다드의 칼리파는 처형되었으며, 러시아의 공국들은 칸국에서 임명장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왕실이 섬에 있는 동안 본토는 여섯 차례 유린되었다. 산성과 섬으로 백성을 옮기는 입보 정책이 이어졌고 그 과정 자체가 큰 고통이었다. 초조대장경 판목이 불탔고 수많은 사람이 끌려갔다.
주목할 것은 저항의 주체다. 이 해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가 전사했는데, 승려 김윤후가 이끈 부곡민과 승도가 거둔 승리였다. 충주성에서도 노비와 천민이 성을 지켰다. 지배층이 강화도에 있는 동안 본토의 저항은 밑에서 나왔다.
왕조는 살아남았고 백성이 그 대가를 치렀다. 둘 다 사실이며, 하나만 말하면 정직하지 않다.
나라가 살아남았다는 것과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같은 말일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한 시대를 평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