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날, 그리고 끝나지 않은 것

1945 · 일본 도쿄

1945년 8월 15일 항복이 발표되고 9월 2일 문서에 서명했다. 제국은 92년 만에 해체되었다.

그런데 해방된 한반도에는 곧 다른 선이 그어진다. 8월 하순 두 나라가 위도 하나를 기준으로 점령 구역을 나눴고, 3년 뒤 두 정부가 서고, 5년 뒤 전쟁이 벌어진다.

대영제국 편의 1947년 시점에서 우리는 같은 구조를 보았다. 인도의 국경선은 그 땅에 와 본 적 없는 법률가가 다섯 주 만에 그었다. 여기서도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은 결정으로, 짧은 시간에, 지도 위에서 정해졌다.

청산의 문제가 남았다. 도쿄에서 열린 재판은 침략 전쟁의 책임을 물었으나 천황은 기소되지 않았다. 세균전 부대의 책임자들은 연구 자료를 넘기는 대가로 면책되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청산보다 반공 진영의 재건이 우선순위가 되었고, 공직에서 물러났던 인물들이 곧 복귀했다.

한국에서도 친일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기구가 1948년에 설치되었으나 1년 만에 사실상 해체되었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조건에서 그 과제는 뒤로 밀렸고, 반세기 뒤에야 다시 다뤄진다.

이 두 미청산이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나란히 보아야 한다. 어느 한쪽만 지적하면 그 시기의 국제적 조건이 사라진다.

1965년 국교가 맺어졌다. 조약은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개인의 청구권이 그 안에 포함되는가를 두고 해석이 갈렸고, 이 문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아틀라스는 현재 진행 중인 외교 사안에 대해 사실관계까지만 적는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함께 적는다.

하나. 피해를 입은 지역은 한반도만이 아니다. 중국·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싱가포르·네덜란드의 피해자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같은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 문제를 한 나라와 한 나라 사이의 감정으로 좁히면 그 넓이가 사라진다.

둘. 전후 일본 사회 안에서 전쟁 책임을 묻는 연구와 운동은 계속되어 왔다. 교과서 서술과 정부 담화를 둘러싼 논쟁도 그 안에서 벌어졌다. 그 사회를 하나의 목소리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으며, 동시에 국가로서의 공식 입장은 별개의 문제다.

이 시리즈는 열네 편 동안 같은 원칙을 지켜 왔다. 제국은 주인공이되 영웅이 아니다. 확정된 사실의 부정에는 중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편에서든 그 원칙은 같게 적용된다 — 우리 쪽 일이라서가 아니라 원칙이기 때문에 그렇게 적는다.

한 시대의 책임을 다음 세대가 어디까지 이어받아야 할까?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을까?

관련 콘텐츠

이 글은 일본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