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라는 주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1930 · 함남 흥남

식민지 시기에 철도가 놓이고 공장이 세워지고 학교가 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통계로 확인된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반박하면 논쟁에서 진다.

물어야 할 것은 다른 지점이다.

첫째, 무엇을 위해 지어졌는가. 철도의 노선은 항구와 광산과 대륙을 잇는 방향으로 놓였다. 부산에서 신의주로 이어지는 축은 일본과 만주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흥남을 비롯한 북부의 대규모 공장과 발전소는 1930년대에 집중적으로 세워지는데,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삼기 위한 배치였다.

둘째, 누구의 부담으로 지어졌는가. 그 자본과 기술과 경영은 일본 쪽이 쥐었고 조선인은 주로 하급 노동에 배치되었다. 1930년대 후반 공업 생산이 크게 늘던 시기에 조선인의 식량 소비는 오히려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쌀은 증산되었지만 그만큼 이출되었다.

셋째, 누가 그 결과를 가져갔는가. 해방 시점에 조선 내 회사 자본의 절대다수가 일본인 소유였다. 기술을 익힌 조선인 관리자와 기술자의 수는 매우 적었고, 그것이 해방 직후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준다.

넷째, 그것이 유일한 길이었는가. 이것이 핵심이다.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근대화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검증할 수 없는 가정이다. 반대로 같은 시기 독립을 유지한 나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산업화한 사례가 있다. 조선에서도 개항 이후 자생적인 상업과 산업의 흐름이 있었고, 그것이 어디까지 갔을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을 근거로 있었던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섯째, 교육이다. 학교 수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조선인의 취학률은 일본인 거주자에 비해 크게 낮았고, 고등교육의 문은 좁았으며,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어 교육이 축소되고 학교에서 일본어 사용이 강제되었다. 무엇을 가르치는 교육이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여기서 균형을 하나 더 잡아야 한다. 이 시기 조선 사회 안에서 자본을 축적하고 사업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고, 근대 교육을 받고 전문 직역에 진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존재를 지우면 이 시기의 사회사가 사라진다. 다만 그 개인들의 성취를 지배 체제의 성과로 옮겨 적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지배 아래에서 무언가가 지어졌다면, 우리는 그 건물과 그 지배를 어떻게 따로 셈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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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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