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왜 무너졌나

612 · 평안남도 청천강

589년 370년 만에 중원이 다시 통일되었다. 고구려에게 이것은 가장 큰 변화였다 — 갈라진 여러 나라를 상대로 외교하던 조건이 사라지고, 하나의 거대한 국가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612년 수가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를 쳤다. 사서에 전하는 병력 규모는 당대의 과장이 섞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국가 전체를 동원한 원정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요동성에서 막혔고, 평양으로 직행한 별동대는 살수에서 궤멸했다.

고구려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겹이다. 요동의 성들을 하나씩 함락해야 평양으로 갈 수 있는 지형, 촘촘히 쌓은 산성과 축성술, 들을 비우고 성으로 들어가 버티는 전술, 그리고 그 시간이 만들어 낸 원정군의 보급 붕괴. 을지문덕의 유인 작전은 그 조건 위에서 성립했다.

이후 두 차례 더 원정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6년 뒤 왕조가 무너진다.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고구려가 수를 무너뜨렸다」는 문장은 절반만 맞다. 수는 이미 안에서 갉아먹히고 있었다 — 대운하 공사에 수백만이 징발되었고, 궁궐과 도성 건설이 겹쳤으며, 원정 실패가 이어질 때마다 반란이 번졌다. 고구려 원정은 그 위에 놓인 결정타였지 유일한 원인이 아니었다.

이렇게 적는 이유는 승리를 깎으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다. 조건을 정확히 놓아야 그 승리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보인다. 국가 전체를 동원한 제국의 원정을 세 번 막아 낸 것은 그 자체로 드문 일이며, 그 사실은 과장 없이도 충분히 크다.

뒤이은 당도 645년 태종이 직접 원정했다가 안시성에서 막혀 물러났다. 그 뒤 당은 방식을 바꾼다 — 대규모 원정 대신 국경을 계속 압박하는 소모전으로. 그 20여 년이 고구려를 지치게 만들었고, 668년의 결과로 이어진다.

한 번의 큰 승리와 오래 이어지는 압박 중,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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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당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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