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지리서에 신라가 적혔다

845 · 이라크 바그다드 · 한반도

9세기 중엽 바그다드의 한 관리가 지리서를 썼다. 제국의 도로와 주변 나라들을 정리한 실무용 책이었는데, 그 동쪽 끝에 신라에 대한 서술이 나온다. 중국 너머 바다에 금이 많은 나라가 있고,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좋은 환경 때문에 나오려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기록이다.

이 서술은 사실 확인이 된 정보라기보다 전해 들은 이야기에 가깝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내용의 정확성이 아니라 존재 자체다. 유라시아 서쪽 끝에서 쓰인 책에 동쪽 끝 반도의 이름이 적혔다는 사실은, 이 시기 세계가 이미 하나의 교역망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결은 바닷길이었다. 페르시아만에서 출발한 배가 인도 서해안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 남부에 닿았고, 그곳에는 아랍과 페르시아 상인의 거주 구역이 있었다. 신라는 그 항로의 동쪽 끝에 있었다.

같은 시기 신라에서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근거로 동아시아 바닷길을 쥐고 있었다(828 설치). 서쪽 끝에서 인도양을 건너온 그물과 동쪽 끝의 그물이 중국 남부에서 만나고 있었던 셈이다.

고려 시대에는 접촉이 더 분명해진다. 벽란도에 아라비아 상인이 드나들었고, 고려라는 이름이 서방에 전해진 통로도 이들이었다. 오늘날 서구권이 한국을 부르는 이름의 뿌리가 여기 있다.

기록이 남지 않은 접촉은 없었던 접촉일까? 우리가 아는 교류의 범위는 실제 교류의 범위와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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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슬람 칼리파국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