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를 최초의 제국이라 부르는 서술이 많다. 그런데 앞선 것들이 있다. 아카드는 1,000년 넘게 앞섰고, 이집트 신왕국은 가나안까지 다스렸으며, 히타이트는 아나톨리아 전체를 묶었다.
그러면 왜 아시리아인가.
답은 크기가 아니라 기술에 있다. 기원전 8세기의 아시리아에서 제국을 운영하는 도구가 처음으로 한 세트로 갖춰진다 — 왕에게 직속된 상비군, 총독이 다스리는 속주, 도로와 역참, 단계별로 압력을 높이는 조공 체계, 그리고 정복지 주민을 대규모로 옮기는 정책.
이 다섯 가지는 이후 모든 제국이 쓴다. 페르시아가 그대로 물려받았고, 로마가 독립적으로 같은 구조에 도달했으며, 한이 군현제로, 오스만이 속주와 밀레트로, 청이 다중 통치로 각자의 판을 만들었다. 형태는 달라도 문제는 같았다 — 멀리 있는 땅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출발은 제국과 거리가 멀었다. 기원전 19세기의 아슈르는 상인들의 도시였다. 나귀 대상이 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나톨리아까지 주석과 직물을 실어 날랐고, 그곳 교역소에서 오간 계약서와 채무 문서 수천 점이 남아 있다. 현지 왕에게 세금을 내고 보호를 받으며 장사했다.
정치적 지배 없이 상업망으로 먼 곳과 이어지는 방식이다. 대영제국 편의 1600년 시점에서 우리는 같은 형태를 보았다 — 특허장을 받은 회사가 해안의 창고를 지키며 무역하던 시절. 3,400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구조가 나타난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그 상업망이 나중에 제국이 된다. 순서가 같다.
이 편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지만 다루는 시대는 가장 이르다. 첫 편이었던 페르시아의 첫 글이 「아시리아가 무너진 뒤 그 유산을 나눠 가진 세력들」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으니, 시리즈가 한 바퀴 돌아 그 앞자리로 온 셈이다.
무엇을 최초라고 부를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초」를 정하는 방식은, 그 대상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