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별곡 — 이 광경이 어떠합니까

1216 · 고려 개경(개성)

고려 고종 때 한림(翰林)의 여러 유학자들이 함께 지은 8장짜리 노래다. 현전하는 경기체가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제작 연대는 1216년(고종 3)에서 1230년 사이로 추정된다. 『고려사』에는 한문과 이두로, 『악학궤범』과 『악장가사』에는 국한문으로 실려 전한다.

元淳文 仁老詩 公老四六 / 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 / 沖基對策 光鈞經義 良經詩賦 / 위 試場ㅅ景 긔 엇더ᄒᆞ니잇고 琴學士의 玉筍門生 琴學士의 玉筍門生 / 위 날조차 몃 부니잇고

현대어로 옮기면 이렇다. 유원순의 문장, 이인로의 시, 이공로의 사륙문 / 이규보와 진화의 쌍운주필 / 유충기의 대책문, 민광균의 경의, 김양경의 시부 / 아아, 과거 시험장의 광경 그것이 어떠합니까 // 금의(琴儀)가 배출한 죽순처럼 많은 제자들 / 아아, 나까지 포함해 몇 분입니까.

【자랑의 문학】 이 노래의 화법은 앞서 본 속요들과 완전히 다르다.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름을 부른다. 1장은 당대 문인들의 이름과 그들의 특기를 줄줄이 열거하고 "이 광경이 어떠합니까"라고 묻는다. 답은 정해져 있다 —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슬쩍 덧붙인다. "나까지 포함해 몇 분입니까." 자기도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8장의 구성은 이렇다. 1장 시부(문인과 문장), 2장 서적, 3장 서체와 명필, 4장 명주(좋은 술), 5장 명화(꽃), 6장 악기와 악공, 7장 명산과 명루, 8장 추천(그네뛰기).

앞의 세 장은 학문과 수양에 관한 것이지만 뒤의 다섯 장은 술과 꽃과 음악과 그네다. 성격이 도중에 바뀐다. 그래서 이 작품을 두고 귀족적·과시적·풍류적·향락적이라는 평가가 함께 붙는다.

【사물의 이름을 부르는 시】 경기체가는 서정시가 아니라 교술시(敎術詩)로 분류된다.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대신, 주위 사물의 이름을 나열해 감정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랑스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랑스러운 것들의 목록을 읊고 "어떻습니까"라고 묻는다. 감정을 목록으로 치환하는 이 방식은 한국 시가에서 드문 것이다.

각 연 끝에 반복되는 "경(景) 긔 엇더ᄒᆞ니잇고"에서 갈래 이름이 나왔다. 경기하여가(景幾何如歌), 경기체가, 별곡체 등으로 불린다. 3·3·4조의 3음보 율격에 분절체이고 후렴이 있다는 점은 속요와 같아서, 형식적으로는 속요에서 나왔으리라 짐작된다.

【누가 왜 불렀나】 담당층은 무신정권기 이후 등장한 신흥 사대부다.

1170년 무신란으로 문신들이 대거 살해되거나 밀려났다. 상당수는 초야에 은둔했지만, 일부는 집권 무신들의 문하를 드나들며 새로운 관료층을 이뤘다. 「한림별곡」 1장에 이름이 나오는 이인로·이규보·진화가 그런 인물들이다. 금의(琴儀)는 당시 과거의 고시관으로, 자기가 뽑은 제자들이 죽순처럼 많다는 자랑이 1장의 결론이다.

해석은 여기서 갈린다. 하나는 이를 신진 사류의 당당한 기개로 읽는 것이다. 새로 부상하는 계층이 자기 존재를 선언하는 노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신들이 정권을 잡자 실권을 잃은 문인들이 풍류와 향락으로 도피한 결과로 읽는 것이다. 뒤의 다섯 장이 술과 꽃과 그네로 채워진 점이 근거가 된다.

두 독법은 배타적이지 않다. 권력에서 밀려난 자들이 문화적 우월감으로 자존을 지키는 일은 흔하다.

【이후로 이어진 것】 「한림별곡」은 『악장가사』에 실려 궁중 음악으로 연주됐고 귀족의 연회에서도 널리 불렸다. 이 형식은 안축의 「죽계별곡」·「관동별곡」으로 이어지고, 조선에 들어서도 사대부들이 계속 창작했다. 선조 이후 명맥이 끊긴 것으로 보지만, 철종 때 민규의 「충효가」(1860)를 마지막으로 꼽기도 한다.

문학사에서 경기체가는 향가와 시조·가사를 잇는 과도기적 형태로 자리매김된다. 다만 이 갈래의 진짜 의미는 다른 데 있을지 모른다. 문학이 늘 숭고한 것만 다루지는 않는다는 것 — 「한림별곡」은 언어가 놀이가 되고 자랑이 되는 순간을 기록한 드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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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가요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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