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금차회 — 금비녀를 뽑아 전쟁에 바치다

1937 8월 20일 ·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터지고 한 달여 뒤인 8월 20일,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강당에서 여성 친일단체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가 조직됐다. 이름의 금차(金釵)는 금비녀다. 회장은 윤덕영의 아내 김복완. 일제에게 작위를 받은 귀족들의 부인, 조성근·박두영 등 친일 고급장교의 부인, 민원식의 아내이자 엄비의 질녀인 엄채덕, 천향원 여사장 김옥교 등 상류층 부녀들이 모였고 — 여기에 김활란, 고황경, 송금선, 유각경 등 신교육을 받은 여성계 인사들이 함께했다. 총독부 중앙정보위원회가 사주해 만든 단체였다.

설립 목적은 일본군의 전쟁 수행 지원 — 국방헌금 조달과 "황군" 원호였다. 결성식 자리에서만 금비녀 11개, 금반지 3개, 금귀개 2개, 은비녀 1개, 현금 889원 90전이 즉석에서 갹출·헌납됐다. 9월 20일에는 간사 50명을 10개 반으로 나눠 용산육군병원과 일본군 유가족 가정 500호를 위문했다. 이 헌납 장면을 화가 김은호가 「금차봉납도(金釵奉納圖)」로 그려 미나미 총독에게 증정했다 — 3·1운동에 연루된 전력까지 있던 어진화사가, 이 그림을 기점으로 친일 미술의 길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이 단체가 보여주는 것은 동원의 확장이다. 앞선 시기의 친일단체는 정치인·관료·자본가·폭력배 — 요컨대 남성 유력자들의 세계였다. 1937년의 전시체제는 그 바깥에 있던 여성을, 그것도 두 갈래로 끌어들였다. 구시대의 귀족 부인들과 신시대의 여성 지식인이 같은 단체에서 만난 것이다. 특히 여성 교육의 상징이던 인물들의 참여는, 이후 학병 권유 연설로 이어지는 여성 지식인 전쟁협력의 출발점이 된다.

비녀는 당시 여성이 지닌 거의 유일한 재산이자 몸에 지니는 물건이었다. 그것을 뽑아 바치는 의식이 "애국"의 이름으로 연출됐을 때 — 강요와 협력의 경계는 어디였고, 그 경계를 물을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출처

이 글은 협력의 계보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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