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헝가리 수교 — 북방외교의 시작
1988년 7월 7일 노태우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에 따라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이 본격화되며, 1989년 2월 1일 헝가리와 정식 수교했다 — 동구 공산권 국가로는 최초였다. 서울올림픽 개최와 미·소 데탕트라는 우호적 여건이 맞물린 결과였다. 이를 발판으로 같은 해 폴란드·유고슬라비아와도 수교했고,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으로 이어지는 북방외교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냉전 적대국이었던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는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효과도 함께 가져왔다.
관련 인물
세계는 같은 시기
- 천안문 사태 (1989)
1989년 4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베이징 학생·시민들이 정치 개혁과 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와 단식 농성을 벌였다. 6월 3~4일 중국 정부는 계엄군을 동원해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같은 시기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움직임에 자극받은 중국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였지만,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 자유화를 거부하고 경제 개혁만 지속하는 노선을 분명히 했다.
- 소련 해체 (1991)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 개혁이 가속화되며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뒤, 12월 25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다음날 소련이 공식 해체됐다. 12개 공화국이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
1985년 취임한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의도와 달리 체제 자체의 붕괴로 이어진 결과였다. 1990년 한소수교,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등 한반도 탈냉전 외교도 이 흐름 속에서 가능해졌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냉전체제의종식과북방외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북방외교
이 사건과 이어지는 것
같은 무렵의 사건
인물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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