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 개헌서명운동
2·12총선 승리에 힘입어 신민당과 민추협은 1986년 2월 12일부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위한 1천만 명 서명운동을 본격 개시했다. 전국 각지에서 개헌추진위원회 지부 결성대회가 잇따라 열렸고, 광주 대회에는 30만 명이 모여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 구호가 등장했다. 민통련 등 재야 세력도 적극 합류했지만, 4월 김세진·이재호의 분신 이후 김대중·이민우가 "과격 학생운동과 결별"을 선언하며 제도권 야당과 재야·학생운동 사이에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천5·3민주항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건유형항목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