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 "얼굴 없는 고문기술자"

1985년 9월 ·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 경기도경 공안분실

1970년 순경으로 임용된 이근안은 1972년 치안국 대공분실로 발령된 뒤 16년간 신원을 숨긴 채 시국사건 관련자들을 전기고문·물고문·통닭구이·관절꺾기 등으로 고문해 자백을 받아냈다. 남민전 사건(1979), 1981년 서울대 무림사건 등에 관여했고, 무엇보다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근태를 경기도경 공안분실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전기고문으로 짓밟아 평생 후유증을 남겼다. 이 공로로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옥조근정훈장을 비롯해 재직 중 16차례나 표창을 받았다. 1988년 수사 대상이 되자 잠적해 11년간 도피했고, 도피 중 김기춘 검찰총장에게 "여론 재판을 받고 싶지 않다"는 편지까지 보냈다. 1999년 동료 경관들이 유죄를 선고받자 자수했고, 2000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목사가 됐지만 "심문은 예술이다", "건전지 하나 들이대니 빌빌거리더라"는 식의 망언을 반복해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2018년 유족에게 114억 원의 국가배상이 확정됐고, 국가가 그에게 청구한 구상금도 끝내 갚지 않은 채 2026년 3월 25일 사망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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