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결성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1964년 3월 한일회담 조기 타결("3월 타결, 5월 조인")을 추진하자, 야당과 사회단체 대표 200여 명이 3월 9일 대일굴욕외교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구국선언을 채택했다. 청구권 3억 달러와 평화선 철폐가 "국토를 팔아먹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3월 24일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에서 시작된 학생 시위는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이후 석 달간 이어질 거대한 반대 투쟁의 서막을 열었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3항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일협정반대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