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정 — 근우회에서 조선의용대까지, 총을 든 페미니스트
동래의 소녀 박차정은 근우회 중앙에서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이 하나의 싸움임을 배웠고, 광주학생운동 연대 시위를 조직하다 옥고를 치른 뒤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에 합류했다 — 그곳에서 김원봉과 결혼했지만 그는 누구의 아내이기 전에 독자적인 혁명가였다.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 무장선전과 전투에 나섰고, 쿤룬산 전투에서 입은 총상의 후유증으로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 충칭에서 눈을 감았다. 남편 김원봉이 그의 유해를 고향 밀양에 묻고 월북한 탓에 이 이름 역시 오래 지워져 있다가, 1995년에야 서훈이 이뤄졌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차정
-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