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도일(渡日) 증가와 차별

1923년 5월 · 오사카·도쿄 등 일본 도시

여행증명서 제도가 완화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는 조선인이 급증했다. 이들은 가장 위험하고 저임금인 일을 도맡았고, 일본인 노동자를 대체한다는 이유로 멸시와 반감의 대상이 됐다. 도시 빈민가에 모여 살던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 뿌리 깊은 차별은, 같은 해 9월 관동대지진 때 학살의 토양이 됐다. 식민지 백성의 이주가 곧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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