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군단 자유시 이동
간도참변을 피해 밀산에 집결한 독립군 약 3,500명이 대한독립군단으로 재편해 1921년 1월부터 연해주 이만을 거쳐 자유시(스보보드니)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압력을 받은 소련이 무장해제를 통보하면서, 독립군단 내부에서는 상해임시정부 봉대파(대한의용군)와 대한국민의회파(고려혁명군) 사이에 군권 주도권 다툼이 격화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유시사변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