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 서간도 망명과 무장투쟁의 시작
평안북도 의주에서 민족학교 일신학교를 세워 교육운동을 펴던 오동진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의주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령이 떨어지자 그는 3월 18일 가족을 데리고 서간도 관전현 안자구로 망명했다. 그는 안병찬과 함께 대한청년단연합회를 조직해 교육부원으로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강연을 펼쳤고, 비밀결사 광제청년단도 조직했다. 1920년에는 임시정부 군무부 직할 광복군사령부 제2영장을 거쳐 광복군총영의 총영장이 되어, 신의주 철도호텔·선천경찰서 폭파 등 평안도 일대 국내진공작전을 지휘하는 무장투쟁가로 거듭난다. 김좌진·김동삼과 함께 "독립운동 3대 맹장"으로 불리게 될 그의 여정은, 한 시골 교육자가 3·1운동의 충격으로 무장투쟁가로 전환되는 1910년대 말의 전형적 행로를 보여준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오동진
- 위키백과 오동진
- 디지털동작문화대전 오동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