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경성에서 3·1운동을 직접 목격한 17세 학생 유관순은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 천안으로 돌아와, 아버지 유중권·숙부 유중무, 이웃 조인원 등과 함께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했다. 3월 31일 밤 매봉산에 봉화를 올려 거사를 알린 다음 날, 약 3,000명의 장꾼이 모인 장터에서 조인원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군중이 일제히 호응했다. 일본 헌병이 출동해 발포하면서 현장에서 19명이 목숨을 잃었고, 유관순도 부모를 잃고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다. 한 소녀가 마을 어른들을 일으켜 세운, 지역 만세운동의 상징적 현장이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 우리역사넷 유관순
- 디지털천안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