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항소이유서 ⑦ 열아홉 촌뜨기 소년에서 "폭력 과격 학생"까지

1985 5월 27일 · 서울형사지방법원

원문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항소이유서 마지막 장의 맺음말.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인용한 부분.

왜 이 문장인가

가장 개인적인 마지막 장이다. 법관을 지망하며 1978년 상경한 열아홉 살 소년 시절부터 서술이 시작된다 — 유신 체제라는 말에 아무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신입생이, 최루탄 속에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가는 여학생을 목격한 5월의 어느 날 이후 조금씩 변해간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경제학과 대표 선출, 10·26 이후 총학생회 부활운동 참여, 1980년 5·17 이후의 첫 구속과 두 달간의 조사, 그 과정에서 김대중 관련 허위진술을 강요받은 일, 40시간 만의 변칙 입대, 32개월간 "특변자"로서 받은 감시, 그리고 1983년 이른바 "녹화사업"(관제 프락치 공작)과 그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 학우 6명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 1983년 제적학생 복교추진위원회 결성과 복학, 그리고 복학 보름 만에 다시 이 사건으로 제적·구속되기까지의 7년을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문장으로 정리한다. 글을 쓴 날짜(5월 27일)가 서울대 학생 김태훈이 목숨을 끊은 날과 겹친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며,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항소이유서를 맺는다. 이 항소는 이후에도 유죄로 확정됐지만, 이 글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1980년대 학생운동을 대표하는 문서 중 하나로 거론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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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유시민 항소이유서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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