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독립선언서 — 원한이 아니라 문명의 언어로 쓴 독립
원문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 舊怨과 一時的 感情으로써 他를 嫉逐排斥함이 안이로다. (…) 公約三章 一. 今日 吾人의 此擧는 正義, 人道, 生存, 尊榮을 爲하는 民族的 要求이니, 오즉 自由的 精神을 發揮할 것이오, 決코 排他的 感情으로 逸走하지 말라. 最後의 一人까지 最後의 一刻까지 民族의 正當한 意思를 快히 發表하라.
1919년 3월 1일 발표된 선언서의 첫 두 문장, 본문 중 한 대목, 공약삼장 일부 발췌. 본문은 최남선이 기초했다. 공약삼장은 한용운이 썼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당대 근거가 없어, 학계에서는 최남선이 함께 썼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 저자 문제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현대어로 읽기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적인 국민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 평등의 큰 뜻을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일러 민족이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한다. (…) 묵은 원한과 한때의 감정으로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 공약 삼장 하나. 오늘 우리의 이 거사는 정의·인도·생존·존엄을 위한 민족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시원하게 발표하라.
출처
- [기록보존소] 기미독립선언서 원문
- [정부·공공기관] 국가등록문화유산 — 3·1독립선언서
- [기록보존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3·1독립선언서
이 글은 원문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왜 이 문장인가
이 선언서의 놀라움은 첫 문장의 어법에 있다 — "독립을 요구하노라"가 아니라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다.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는 청원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세계에 공포하는 문장이다. 10년의 무단통치 끝에 나온 문서가 총독부를 수신인으로 삼지 않고 "세계만방"과 "자손만대"를 수신인으로 삼은 것이다. 두 번째 놀라움은 절제다. 학살과 수탈을 겪은 민족의 선언문이 "묵은 원한과 한때의 감정으로 남을 배척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단속하고, 공약삼장은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고 못 박는다 — 이 절제는 나약함이 아니라 전략이자 품격이었다. 폭력 진압의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일본의 침략을 "위력의 시대"의 낡은 유물로, 조선의 독립을 "도의의 시대"의 새 질서로 자리매김하는 문명론적 반격이다. 그리고 실제 역사가 이 문서를 완성했다 — 선언서의 언어가 아무리 정제돼 있어도, 그것을 들고 거리로 나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외친 것은 이름 없는 수백만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두 달 넘게 전국과 해외로 번진 만세운동은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지금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에서 시작한다. 4년 뒤 같은 독립운동 진영 안에서 이 선언의 노선을 정면 반박하는 문서가 나온다 — 다음 편에서 읽을 조선혁명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