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어제 서문 — 쉰네 글자에 담긴 문자 혁명의 이유
원문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훈민정음 해례본(1446, 간송미술관 소장본) 첫머리의 세종 어제(御製) 서문 전문 — 한문 쉰네 자가 전부다. 언해본(월인석보 수록)의 첫 구절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어로 읽기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글 모르는 백성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출처
- [기록보존소]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간송미술관 소장)
- [정부·공공기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목록 — 훈민정음(해례본)
- [기록보존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훈민정음
이 글은 원문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왜 이 문장인가
군주가 문자를 만든 일은 세계사에 드물지만, 만든 이유를 이렇게 적어둔 일은 더 드물다. 이 쉰네 자에서 눈여겨볼 단어는 셋이다. 첫째 "이호중국(異乎中國)" — 우리말이 중국과 다르다는 선언은, 한자 문명권의 한복판에서 언어적 자기 인식을 공식 문서의 첫 문장에 놓은 것이다. 둘째 "민연(憫然)" — 가엾게 여긴다는 이 한 단어가 창제의 동기다. 문자는 당시 지배층이 독점한 권력이었고, 서문은 그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어리석은 백성"이 아니라 "글을 배울 기회가 없던 백성"으로 읽어야 한다)의 답답함을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규정했다. 셋째 "편어일용(便於日用)" — 목표가 통치 이념의 주입이 아니라 백성의 일상적 쓰임이라는 점이다. 최만리 등의 반대 상소가 "스스로 중화를 버리고 오랑캐와 같아지려 한다"는 문명론이었음을 떠올리면, 이 서문은 당대 기준으로 대단히 급진적인 문서였다. 반포 후에도 한글은 수백 년간 공문서의 주인 자리를 한문에 내줬지만, 편지와 소설과 상소로 퍼져나간 이 스물여덟 자는 결국 20세기에 이 나라의 공식 문자가 됐다 — 1997년 유네스코는 문자 자체가 아니라 이 책, 곧 문자를 만들고 그 원리와 이유를 기록한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