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공과 사복 — 술 취해 춤춘 승려, 말하지 않은 아이

650 · 경주 (오어사 · 도량사)

삼국유사 의해편에는 「이혜동진(二惠同塵)」이라는 조목이 있다. 두 혜(惠)가 티끌과 같아졌다는 뜻이다. 혜숙(惠宿)과 혜공(惠空), 두 승려가 세속에 섞여 살았다는 이야기다.

동진(同塵)은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에서 온 말로, 빛을 감추고 티끌과 같아진다는 뜻이다. 뛰어난 사람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보통 사람들 속에 섞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편에는 상식적인 승려상과 어긋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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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 — 삼태기를 진 화상**

혜공은 천진공(天眞公)이라는 귀족의 집에서 품팔이하던 노파의 아들이었다. 어릴 때 이름은 우조(憂助)였다.

천진공이 종기가 나 죽게 됐을 때, 일곱 살 우조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제가 가서 뵙겠습니다. 아이가 침상 아래 말없이 앉아 있자 얼마 뒤 종기가 터져 나았다.

천진공은 이 아이가 보통이 아님을 알고 예우했다. 뒤에 우조는 출가해 이름을 혜공이라 했다.

혜공은 만년에 항상 미친 듯이 술에 취해 삼태기를 지고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궤화상(負簣和尙) — 삼태기를 진 화상이라 불렀다. 그가 머문 절은 부개사(夫蓋寺)라 했으니, 부개는 삼태기의 우리말이다.

그는 자주 절의 우물 속에 들어가 몇 달씩 나오지 않았다. 나올 때는 푸른 옷 입은 신동이 먼저 솟아 나왔고, 혜공이 뒤따라 나왔는데 옷이 젖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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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혜공**

삼국유사는 이 두 사람이 함께한 일화를 전한다.

원효가 여러 경전의 주석을 지을 때마다 혜공에게 가서 물었다. 어떤 날은 두 사람이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 대변을 보았다.

혜공이 그것을 가리키며 농담했다. 네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다.

그래서 그 절 이름을 오어사(吾魚寺) — 내 물고기 절이라 했다. 지금 포항에 있는 오어사가 그곳이다.

어떤 이는 이 말을 원효가 했다고도 한다고, 일연은 덧붙여 적는다. 판본에 따라 다르다는 뜻이다.

고승 둘이 물고기를 잡아먹고 배설물을 놓고 농담하는 장면이다. 계율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여럿이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이것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절 이름의 유래로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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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의 마지막**

혜공에 얽힌 이야기는 더 있다. 어떤 절에서 공중에 떠서 입적했는데 사리가 수를 셀 수 없이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런 일화도 전한다. 신인종의 명랑이 새 절을 세우고 낙성회를 열었는데 혜공만 오지 않았다. 명랑이 향을 사르고 정성껏 기도하자 잠시 뒤 혜공이 왔다. 그때 큰비가 내렸는데 혜공의 옷은 젖지 않았고 발에 진흙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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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 — 말하지 않은 아이**

의해편에 「사복불언(蛇福不言)」이라는 조목이 있다. 사복이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주 만선북리에 한 과부가 있었다. 남편 없이 아이를 배어 낳았는데, 아이는 열두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래서 사동(蛇童) — 뱀 아이라 불렸다.

어느 날 어머니가 죽었다. 그때 원효는 고선사에 있었다. 사복이 찾아왔는데 원효가 예를 갖춰 맞았으나 사복은 답례하지 않고 말했다.

그대와 내가 옛날에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죽었다. 함께 장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원효가 좋다고 하고 함께 갔다.

원효가 시신 앞에서 계를 주려 하며 말했다.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이 괴로우니. 죽지 말지어다, 태어나는 것이 괴로우니.

사복이 말했다. 말이 번거롭다.

원효가 고쳐 말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괴롭구나.

두 사람이 시신을 메고 활리산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물었다. 지혜로운 범을 지혜의 숲에 장사 지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복이 게송을 지어 답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하셨네 / 지금도 그와 같은 이 있어 /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말을 마치고 띠풀을 뽑으니, 그 아래 밝고 맑은 세계가 있었다. 칠보로 꾸민 난간과 누각이 장엄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사복이 시신을 업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땅이 곧 합쳐졌다. 원효는 그것을 보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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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들이 놓인 자리**

혜공과 사복은 여러 면에서 어긋나는 인물이다.

혜공은 종의 아들이고, 술에 취해 다니며, 물고기를 먹는다. 사복은 아버지가 없고, 열두 살까지 말을 못 했으며, 원효의 격식 차린 계문을 번거롭다고 자른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 이들은 원효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원효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 원효는 혜공에게 묻고, 사복에게 지적당한다.

이런 배치가 이 책의 성격을 보여준다. 여기서 승려의 위대함은 지위나 계율의 엄격함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 낮은 데 있는 자, 미친 것처럼 보이는 자, 말하지 않는 자가 더 깊은 자리에 놓인다.

불교에는 이런 인물 유형이 있다. 유마거사가 대표적이다. 출가하지 않은 재가자이면서 문수보살과 대등하게 문답하는 인물이다. 원효가 파계 후 스스로를 거사라 칭한 것도 이 계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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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은 왜 이들을 실었을까**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다. 일연은 선종 승려였고, 국존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다. 승과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계단을 하나도 건너뛰지 않고 올라갔다. 제도권 안에서 가장 성공한 승려였다.

그런 사람이 제 책에는 술 취해 삼태기를 지고 다닌 승려, 계문이 번거롭다고 말한 아이, 표주박을 두드리며 노래한 파계승을 실었다.

의해편에는 물론 정통적인 인물들도 실려 있다. 계율을 세운 자장, 화엄을 전한 의상, 유학을 다녀온 원광 — 모두 신라 불교의 기둥들이다.

다만 그 사이사이에 이런 사람들이 끼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유독 생생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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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유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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