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부인과 도화녀 — 꽃을 바친 노인, 죽은 왕과 동침한 여자

702 · 동해안 절벽 · 경주 사량부

삼국유사에는 남자들의 욕망이 향하는 자리에 놓인 여자들의 이야기가 여럿 있다. 그중 두 편을 함께 읽어보자. 하나는 아름다움이 재난을 부르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거절이 죽음 뒤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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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 — 헌화가와 해가**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이었다. 부인 수로(水路)가 동행했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는데, 곁에 천 길이나 되는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그 꼭대기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수로부인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는가.

종자들이 말했다.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때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절벽에 올라 꽃을 꺾어 왔다. 그리고 노래를 지어 함께 바쳤다. 그것이 「헌화가(獻花歌)」다.

자줏빛 바위 가에 /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노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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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임해정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는데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공이 발을 구르며 어쩔 줄 몰랐다. 이번에도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옛사람 말에, 여러 입은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닷속 짐승이 어찌 여러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이 지역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며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로 하니 용이 부인을 받들고 나와 바쳤다. 그때 부른 노래가 「해가(海歌)」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 남의 아내를 앗아간 죄가 얼마나 큰가 / 네가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

앞서 본 가야의 「구지가」와 형태가 거의 같다. 거북에게 명령하고,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고 협박하는 구조다. 70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같은 노래 틀이 반복된 셈이다.

공이 부인에게 바닷속 일을 물으니 부인이 답했다. 칠보로 꾸민 궁전에 음식은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향내가 풍겼다.

일연은 덧붙인다.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붙들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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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까**

표면적으로는 아름다운 여인이 신비한 존재들에게 계속 납치당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몇 가지 층이 겹쳐 있다.

먼저 무속적 해석이 있다. 용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뒤 몸에서 이 세상 것이 아닌 향내가 났다는 대목은, 신과 접촉한 무당의 경험으로 읽힌다. 수로부인이 실제로 제의를 주관하는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노래의 기능에 주목하는 해석도 있다.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고 막대기로 땅을 쳐서 용에게서 사람을 되찾는다 — 이는 집단이 노래로 자연에 대응하는 주술 행위다. 구지가와 해가의 형식이 같다는 점은, 이런 주술 노래가 오랫동안 이어진 관습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헌화가 자체가 남긴 것이 있다. 절벽에 핀 꽃을 갖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이름 모를 노인이 목숨을 걸고 올라간다. 그러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바치겠다고 노래한다.

한국 시가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의 표현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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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녀 — 죽은 왕이 찾아오다**

두 번째 이야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신라 25대 진지왕 때, 사량부에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사람들은 복숭아꽃 같다 하여 도화랑(桃花娘)이라 불렀다.

왕이 소문을 듣고 궁으로 불러 관계를 요구했다. 여자가 답했다.

여자가 지켜야 할 것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일입니다. 남편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가는 일은, 왕의 위엄으로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왕이 물었다. 죽이겠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여자가 답했다. 차라리 저잣거리에서 목이 베이겠습니다.

왕이 농담처럼 물었다. 남편이 없으면 되겠는가.

여자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왕은 그를 놓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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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에 진지왕은 왕위에서 쫓겨나 죽었다. (실제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진지왕이 재위 4년 만에 폐위됐다고 전한다. 삼국유사는 나라를 어지럽히고 음란했다는 이유를 적는다.)

이 년 뒤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다.

남편이 죽은 지 열흘쯤 되던 밤, 죽은 왕이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 방에 들어와 말했다.

네가 예전에 허락한 일을 기억하는가. 이제 남편이 없으니 되겠는가.

여자는 가볍게 승낙하지 않고 부모에게 물었다. 부모가 말했다. 임금의 말씀인데 어찌 피하겠느냐.

왕은 이레 동안 머물렀다. 그동안 방 안에 오색구름이 덮이고 향기가 가득했다. 이레 뒤 왕은 홀연히 사라졌다.

여자는 아이를 가졌고, 사내아이를 낳았다. 이름을 비형(鼻荊)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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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형랑 — 귀신을 부린 아이**

진평왕이 이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길렀다. 열다섯이 되자 집사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비형은 밤마다 궁을 빠져나가 멀리 나가 놀았다. 왕이 군사를 시켜 지켜보게 하니, 비형은 월성을 날아 넘어 서쪽 황천 언덕에서 귀신들을 거느리고 놀다가 새벽 종소리가 나면 돌아왔다.

왕이 비형에게 말했다. 네가 귀신들을 부린다니, 신원사 북쪽 개천에 다리를 놓을 수 있겠느냐.

비형이 귀신들을 시켜 하룻밤에 큰 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를 귀교(鬼橋)라 했다.

왕이 또 물었다. 귀신들 중에 사람으로 나타나 조정을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

비형이 길달(吉達)이라는 자를 데려왔다. 길달은 충직하게 일했고, 흥륜사 남쪽에 문루를 세웠다. 그런데 어느 날 여우로 변해 달아났고, 비형이 귀신을 시켜 잡아 죽였다.

이후 귀신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 달아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음 글을 지어 써 붙이고 잡귀를 물리쳤다.

성스러운 임금의 혼이 아들을 낳았으니 / 비형랑의 집이 바로 여기다 / 날뛰는 온갖 귀신들아 / 이곳에 머물지 말라

일연은 이 풍속이 당시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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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묘한 이야기가 말하는 것**

연구자들은 이 설화에서 정치적 맥락을 읽는다.

진지왕은 폐위된 왕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그는 성제(聖帝)라 불린다. 쫓겨난 왕을 성스럽다고 부르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진지왕의 손자가 김춘추, 곧 태종무열왕이다. 무열왕계가 왕위를 차지한 뒤, 자기 조상인 진지왕의 폐위를 미화하고 복권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속신앙의 측면에서는 비형랑이 문에 붙이는 부적의 기원으로 주목된다. 귀신을 부리는 존재가 오히려 귀신을 쫓는 수호신이 되는 구조인데, 이는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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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면**

수로부인은 아름다움 때문에 계속 끌려간다. 도화녀는 아름다움 때문에 왕에게 요구받는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야기 안에서 하는 일은 다르다.

수로부인은 꽃이 갖고 싶다고 말하고, 남들이 불가능하다 할 때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절벽에 오른다. 그의 말은 사건을 일으킨다.

도화녀는 거절한다. 왕의 위엄으로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한다.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이 없으면 되겠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다 — 이 대답이 나중에 죽은 왕을 불러들이는 조건이 된다.

두 여자 모두 이야기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움직이는 축이다. 고대 기록에서 여성이 이만큼 또렷하게 남는 경우는 흔치 않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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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유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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