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김부식과 일연, 두 시대의 역사서

1281 · 개경 · 인각사

삼국사기가 나오고 대략 백삼십 년 뒤, 경상도의 늙은 승려가 또 하나의 삼국 이야기를 엮었다. 일연의 『삼국유사』 — '유사(遺事)', 남겨진 일들이라는 제목부터가 선언이다. 정사가 걷어낸 것들, 그러니까 단군의 신화와 향가 열네 수와 저잣거리의 설화들을 줍겠다는 것. 두 책은 흔히 이성의 역사서와 이야기의 역사서로 대비되지만,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그 대비를 한 번 더 비틀어 본다 — 두 책의 차이는 두 저자의 기질 이전에, 두 시대의 차이였다고.

김부식의 시대는 문벌귀족의 전성기였다. 나라는 안정됐고 제도는 정비됐으며, 필요한 것은 왕조의 정통성을 세우고 군신의 규범을 밝히는 반듯한 정사였다. 금의 위협조차 사대라는 제도적 해법 안에서 관리되던 시대 — 그 시대는 유교 합리주의의 자로 잰 역사서를 낳았다. 일연의 시대는 그 모든 것이 무너진 뒤였다. 몽골의 말발굽이 국토를 일곱 차례 휩쓸었고 황룡사 구층목탑이 불탔으며 조정은 강화도에 숨어 있었다. 제도가 나라를 지켜주지 못할 때, 늙은 승려는 이 공동체가 어디서 왔는지의 이야기 — 하늘에서 내려온 시조와 곰이 사람이 된 신화 — 를 주워 모았다. 정사가 지킬 수 없게 된 것을 설화가 지키러 나선 것이다.

그래서 두 책은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짝이다. 삼국사기가 없었으면 우리는 삼국의 뼈대 — 연대, 왕계, 제도, 전쟁 — 를 잃었을 것이고, 삼국유사가 없었으면 살과 숨 — 단군, 향가, 백성의 이야기 — 을 잃었을 것이다. 하나는 승자의 자리에서 쓰인 기록의 힘과 위험을, 다른 하나는 폐허의 자리에서 쓰인 기억의 힘을 증언한다. 우리가 두 시리즈를 나란히 놓는 이유다.

그리고 이 짝은 여전히 자란다. 김부식이 닫아 놓은 판결문에 예식진의 묘지명이 금을 냈듯이(9편), 앞으로도 땅속에서, 문서고에서, 새로운 돌과 종이가 나와 두 책의 행간을 고쳐 쓸 것이다. 역사는 두 권의 옛 책 사이 어딘가에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지금도 갱신되는 중이다 — 이 시리즈와 ATLAS 전체가 서 있고 싶은 자리도 바로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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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사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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