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플랑크 — "절망의 행동"이 세기를 열다

1900 12월 14일 · 독일 베를린

1900년 12월 14일, 베를린의 독일물리학회에서 42세의 이론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흑체복사 공식의 이론적 유도를 발표했다. 뜨겁게 달군 물체가 내는 빛의 스펙트럼 — 용광로 온도를 재려는 산업적 필요와 맞닿아 있던 이 문제는 19세기 물리학이 끝내 풀지 못한 숙제였다. 플랑크는 계산을 맞추기 위해 에너지가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hν라는 덩어리, 곧 "양자(Quantum)" 단위로만 주고받아진다고 가정했다. 보수적인 물리학자였던 그에게 이것은 혁명 선언이 아니라 궁여지책이었다 — 훗날 그는 이를 "절망의 행동"이었다고 회고했고, 이후 여러 해 동안 자신의 가설을 고전물리학 안으로 되돌리려 애썼다. 그러나 균열은 되메워지지 않았다. 에너지가 띄엄띄엄하다는 이 가정은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보어의 원자모형을 거쳐 사반세기 뒤 양자역학이라는 새 물리학으로 자라난다. 플랑크 자신의 삶은 그 세기의 비극을 함께 통과했다 — 첫 부인과 사별했고, 장남은 1차 대전에서 전사했으며, 차남 에르빈은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나치 시기 독일에 남아 과학계를 지키려 했던 그의 선택은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지만, 아인슈타인을 베를린으로 불러들이고 유대인 동료들을 옹호하려 했던 기록 또한 남아 있다. 그가 1900년 겨울에 연 문은, 그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먼 곳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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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양자역학 100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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