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 (1895–1915)

1895 · 제천 · 전국의 산야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맞서 일어난 을미의병부터, 군대 해산 뒤 전면전이 된 정미의병까지 — 유생과 농민과 해산 군인이 한 대열이 되어 기울어 가는 나라를 붙들었다. 남한대토벌 이후에도 만주와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군이 되었다.

【규모】 1907년부터 1911년 사이 일본군 기록만으로 1만 7천여 명이 피살되었다(『조선폭도토벌지』) — 가해자의 장부로만 세어진 죽음이다.

【기억의 현재】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의 기원이 되었으나, 서훈은 이름이 확인된 극히 일부에게만 이루어졌다.

【헌사】 기울어 가는 나라를 붙들려 이름 없이 산야에서 스러지신 의병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그 수를 적국의 장부로만 헤아려야 하는 부끄러움까지 함께 기록합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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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억의 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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