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다 실종된 열일곱 김주열이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르자, 분노는 전국으로 번졌다.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했고, 일주일 뒤 이승만은 물러났다.
【규모】 사망 186명, 부상 6천여 명(국가기록원).
【기억의 현재】 1963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고 국립4·19민주묘지가 조성되었다. 헌법 전문은 4·19 민주이념의 계승을 명시한다.
【헌사】 부정한 권력에 맞서 일어난 학생과 시민들, 그리고 마산 앞바다에서 돌아온 열일곱 김주열과 함께 스러진 186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