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9월 22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혁명 직후의 혼란을 틈타 이란을 침공했다. 국경 수로 샤트알아랍의 통제권과 유전 지대가 걸려 있었고, 시아파 혁명이 이라크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계산도 있었다. 전쟁은 8년을 끌었다. 참호전, 소년병, 화학무기가 동원되었고 양측 사망자는 백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1988년 유엔 중재로 휴전했을 때 국경선은 전쟁 전과 거의 같았다.
이 전쟁이 세계 경제와 만난 지점이 이른바 "탱커 전쟁"이다. 양측이 상대의 석유 수출을 막으려 페르시아만의 유조선을 서로 공격하면서, 세계 원유의 상당 부분이 지나는 이 좁은 바다가 처음으로 국제 분쟁의 직접적 무대가 되었다. 쿠웨이트 유조선이 미국 국적으로 재등록해 미 해군의 호위를 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 가능한 급소"라는 인식이 이때 국제사회에 각인되었다.
1988년 7월 3일에는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호가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이란항공 655편 여객기를 격추해 탑승자 290명 전원이 사망했다. 미국은 전투기로 오인한 사고라고 밝혔고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했으나, 공식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란에서 이 사건은 오늘까지 미국에 대한 불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한국은 이 전쟁의 관찰자가 아니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으로 수많은 한국 노동자와 건설사가 이 지역에 나가 있었고, 이란과 이라크 양국 모두에 한국 기업의 공사 현장이 있었다. 전쟁은 그 현장을 직접 위협했고, 1980년대 중동 건설 붐 퇴조의 한 배경이 되었다. 지금도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와 테헤란의 서울로는 그 시절 두 나라가 맺었던 관계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