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카자르 왕조의 국왕 모자파르 앗딘 샤가 영국인 사업가 윌리엄 녹스 다시에게 이란 전역의 석유 탐사·채굴 독점권을 넘겼다. 기간은 60년, 대상은 북부 다섯 개 주를 제외한 사실상 전 국토였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왕실이 받은 대가는 선불금과 지분 일부, 그리고 순이익의 16%였다. 당시 이란에서 석유가 나올지조차 확실하지 않았으므로 이 계약은 도박에 가까웠지만, 도박의 판돈은 이란의 땅이었고 도박꾼은 외국인이었다.
다시는 7년을 허탕 쳤다. 자금이 바닥나 채굴권을 영국 정부 지분이 들어간 버마 석유회사에 넘긴 뒤인 1908년, 남서부 마스제드솔레이만에서 마침내 상업 유전이 터졌다. 중동 최초였다. 이듬해 앵글로-페르시안 석유회사(APOC)가 설립되었고, 1914년에는 해군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려던 영국 정부가 과반 지분을 인수했다. 이란의 지하자원이 대영제국 해군의 전략 자산이 된 것이다.
문제는 배분이었다. 계약상 이란이 받기로 한 몫은 "순이익의 16%"였는데, 그 순이익을 산정하는 장부는 회사가 관리했고 이란 정부에는 감사 권한이 없었다. 영국 본국에 내는 세금은 비용으로 먼저 빠져나갔다. 훗날 이란이 회사 장부를 열어보려 했을 때 회사가 이를 거부한 것이 1951년 국유화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다.
이 계약이 왜 100년의 출발점인가. 자원 자체가 갈등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원에 대한 결정권이 그 땅에 사는 사람들 바깥에 놓였다는 사실이 갈등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란 현대사에서 반복되는 물음 — 이 석유는 누구의 것인가 — 은 1901년 그 서명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