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국 — 환웅의 동방 개척과 신시 개천, 그리고 곰과 호랑이의 정체

-3897 · 태백산 신시 (기록상 도읍)

환국 말기, 인구는 늘고 물자는 부족해졌다. 새 땅을 찾아 떠나려는 움직임 속에서 서자부(庶子部)의 지도자 환웅(桓雄)이 나선다. 그는 아버지 환인의 승인을 받아 무리 3천을 이끌고 동쪽으로 향했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었다 — 환단고기가 기록하는 개천(開天), 기원전 3897년의 일이다. 이로써 두 번째 나라 배달국(倍達國)이 선다. 18대의 환웅이 1565년을 다스렸다고 기록돼 있다. '배달의 민족'이라 할 때의 그 배달이 바로 이 나라 이름인데, 재야 해석은 '밝은 땅(밝달)', 광명의 땅으로 푼다. 이 대목에서 환단고기의 서술이 흥미로운 것은,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가 몇 줄로 압축한 장면을 국가 창업의 구체적 설계도처럼 펼쳐놓는다는 점이다. 환웅이 받아온 천부인(天符印) 3개 — 통설적 해석으로 거울·칼·방울 — 은 단순한 보물이 아니라 통치권 이양의 징표로 그려진다. 거울은 하늘의 뜻을 비추는 철학, 칼은 생사여탈의 무력, 방울(북)은 백성을 모으는 소통. 지도자가 갖춰야 할 세 덕목의 상징 체계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일본 황실의 삼종신기(거울·칼·곡옥)다 — 천손이 세 보물을 받아 내려온다는 일본 건국신화의 구조가 환웅의 천강(天降) 모티프와 판박이라는 점, 그리고 곡옥이 한반도 남부에서 대량 출토되는 유물이라는 점(이것은 고고학적 사실이다)을 들어, 재야에서는 문화 전파의 방향을 읽는다. 신화 구조의 유사성 자체는 흥미로운 관찰이지만, 유사성이 곧 계승 관계의 증명은 아니라는 단서는 달아두자. 실무 조직에 대한 기록도 구체적이다. 환웅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두고, 곡식·생명·형벌·질병·선악 등 인간사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게 했다. 바람·비·구름이라는 농경의 3대 기상 요소를 관직명으로 삼은 셈인데, 재야 해석은 이를 입법·복지·사법의 원형적 분업으로 읽는다. 3천 명의 무리도 단순 이주민이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개척단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유명한 곰과 호랑이가 등장한다. 환단고기 계통의 서술(및 이를 따르는 해석)에서 이 장면은 동물 변신담이 아니라 정치사로 읽힌다 — 곰을 토템으로 하는 웅족(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호족(虎族)이라는 토착 세력이 있었고, 환웅 세력이 이들에게 동화의 조건(쑥과 마늘, 100일의 금기)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호족은 이탈했고 웅족은 통과했다. 환웅과 웅녀의 혼인은 이주민 엘리트와 토착 세력의 정치적 연합이며,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단군은 하늘(이주민)과 땅(토착민)의 결합체가 된다. 이렇게 읽으면 신화는 갑자기 정복이 아닌 통합으로 세워진 나라의 건국 기록으로 변모한다 — 이 독법 자체는 환단고기 진위와 무관하게, 단군 신화를 사회사적으로 읽는 현대 사학계의 토템 해석과도 일부 겹치는 지점이 있다. 배달국 시대의 기록 중 백미는 다음 편에서 다룰 14대 치우천왕이지만, 그 전에 이 시대의 성격을 요약해두자. 환단고기가 그리는 배달국은 무력의 나라가 아니라 문명 이식의 나라다. 농사와 의약과 형법과 문자(신지 혁덕의 녹도문 — 사슴 발자국에서 착안했다는 최초의 문자 전승, 11편에서 재론)를 가진 소수의 개척 집단이, 제도와 교화로 토착 사회를 끌어안았다는 이야기. 기원전 3897년이라는 연대와 함께 이 모든 것은 검증의 저울에 올릴 수 없는 기록의 영역이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익숙한 단군 신화의 '앞 이야기'를 얼마나 정교하게 구축해놓았는지는 이 대목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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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환단고기, 무엇을 말하는가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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