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비 ③ 열여덟에 오르고 서른아홉에 지다 — 비를 세운 이유
원문
遝至十七世孫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 號爲永樂大王 恩澤洽于皇天 武威振被四海 掃除□□ 庶寧其業 國富民殷 五穀豊熟 昊天不弔 卅有九 寔駕棄國 以甲寅年九月卄九日乙酉 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勳績 以示後世焉 其詞曰
제1면, 건국신화에 이어지는 대목. 마지막 네 글자 기사왈(其詞曰,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에서 비문은 서문을 닫고 훈적기사로 넘어간다. 이 비의 성격을 스스로 밝히는 문장이 여기에 있다 — 어시입비 명기훈적 이시후세언(於是立碑 銘記勳績 以示後世焉).
현대어로 읽기
17세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 열여덟에 왕위에 올라 영락대왕이라 일컬어졌다. 은택은 황천에 두루 미쳤고 위엄과 무위는 온 세상에 떨쳤다. □□를 쓸어 없애니 백성이 그 생업을 편안히 하였다.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은 넉넉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하늘이 돌보지 않아 서른아홉에 수레를 타고 나라를 버리셨다. 갑인년(414) 9월 29일 을유일에 산릉으로 옮겨 모셨다. 이에 비를 세우고 훈적을 새겨 후세에 보이고자 한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출처
- [단행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 [기록보존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광개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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