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 모집·관 알선·징용의 3단계

1939 · 조선총독부 (경성)

강제성 논쟁을 이해하려면 동원이 어떤 절차로 이뤄졌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일본 측 주장의 핵심이 바로 이 절차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인 노무동원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쳤습니다.

첫째, 모집(1939년~)입니다. 일본 기업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직접 인력을 모으는 방식입니다. 형식상으로는 지원입니다.

둘째, 관 알선(1942년~)입니다. 조선총독부와 그 산하 조직이 직접 인력을 배정하고 알선하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행정기관이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셋째, 징용(1944년 9월~)입니다. 국민징용령이 조선인에게 전면 적용됩니다. 이제 법적 강제입니다. 응하지 않으면 처벌 대상이 됩니다.

■ 일본 측 주장의 구조

일본 정부가 강제노동이 아니라고 주장할 때 근거로 삼는 것이 이 단계 구분입니다. 초기의 모집은 지원이었고, 징용은 당시 일본 국내법상 합법적인 국민 의무였다는 것입니다. 2015년 이후 일본 정부가 강제연행이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논리 위에 있습니다.

이 주장은 형식적으로는 틀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법령이 있었고 절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차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 확인되는 사실

모집 단계에서도 강제성이 작동했다는 것이 여러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총독부가 각 도·군·면에 인원을 할당했고, 면 단위 행정과 경찰이 그 할당을 채우는 과정에 개입했습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담당자가 문책을 받는 구조였으므로, 형식은 모집이어도 현장에서는 사실상의 강제가 이뤄졌습니다.

일본 내무성과 후생성의 당시 문서에서도 조선인 노무자 동원에 대한 계획과 할당이 확인됩니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계획에 따라 숫자가 먼저 정해지고 사람이 채워지는 방식이었습니다.

■ 그리고 결정적인 것 — 이탈의 자유

국제노동기구(ILO) 강제노동협약이 정의하는 강제노동의 핵심은 처벌의 위협 아래 비자발적으로 제공되는 노동입니다. 여기서 관건은 시작이 아니라 지속입니다. 스스로 응했더라도 그만둘 수 없다면 그것은 강제노동입니다.

조선인 노무자들은 작업장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도주가 발생하면 수배와 검거가 이뤄졌고, 기업과 경찰이 함께 관리했습니다. 임금의 상당 부분이 강제 저축이나 송금 명목으로 공제되어 본인에게 지급되지 않은 사례가 다수 확인됩니다.

일본 측이 임금을 지급했다고 말할 때, 그 임금이 실제로 본인 손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그만두고 돌아갈 자유가 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ILO는 1999년 이후 여러 차례 일본의 전시 노동 동원을 협약 위반 문제로 다뤄왔습니다.

■ 규모

동원 규모는 자료와 집계 기준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국내외 노무동원과 군인·군속 동원을 모두 포함하면 연인원 기준 수백만 명 규모로 집계되지만, 이는 중복 동원을 포함한 수치입니다. 실제 인원 기준으로는 이보다 적습니다.

이 시리즈는 특정 숫자를 확정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집계 기준을 밝히지 않은 채 큰 숫자만 인용하는 것은, 나중에 그 숫자가 반박되면 사실 전체가 흔들리는 빌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개별 사업장 단위로 확인된 구체적 수치를 쓰는 편이 훨씬 단단합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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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강제동원의 기록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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