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이라는 말은 몽골에서 왔다. 그러나 이 제국을 세운 사람들은 스스로를 몽골이라 부르지 않았고, 그 호칭을 오히려 낮잡아 보는 말로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을 티무르의 집안이라 불렀다.
계보는 이렇게 이어진다. 몽골 편의 마지막 시점에서 차가타이 칸국이 갈라진 자리에 티무르가 일어섰고, 그 후손 중 한 사람이 중앙아시아에서 자기 몫의 땅을 지키려다 실패했다. 사마르칸트를 몇 번 얻었다 잃은 끝에 남쪽으로 밀려나 카불에 자리를 잡았고, 거기서 다시 인도를 쳤다. 1526년 파니파트에서 몇 배 되는 군대를 화포와 기동으로 꺾고 델리에 들어선다.
정복의 계획이 먼저 있었다기보다, 돌아갈 곳이 없어 내려온 쪽에 가깝다. 그가 남긴 회고록에는 인도의 더위와 물맛에 대한 불평이 반복해 나온다. 제국의 시작을 웅대한 결심으로 그리는 서술이 실제 기록과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의 계통이다. 이 제국의 공식 문서는 페르시아어로 작성되었다. 궁정의 시와 역사 서술, 정원의 배치와 건축의 미감이 모두 페르시아 쪽에서 왔고, 실제로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관료와 예술가가 궁정의 중요한 자리를 채웠다.
페르시아 편의 마지막 글은 이렇게 끝났다 — 왕조는 끝났으나 문명은 남았다. 사산조가 무너진 지 900년 뒤, 인도 북부에 세워진 제국의 공문서가 페르시아어로 쓰이고 있었다. 정복당한 쪽의 언어가 다른 대륙의 궁정어가 되는 데 아홉 세기가 걸린 셈이다.
그러니까 무굴은 몽골의 이름과 페르시아의 언어와 인도의 땅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제국이었다. 하나의 민족이나 종교로 설명되지 않는다.
한 나라를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때, 그 이름은 무엇을 설명하고 무엇을 감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