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 두 차례 일본을 쳤고(1274, 1281) 두 번 다 실패했다. 태풍과 일본의 저항이 이유로 꼽힌다.
그런데 그 원정에 쓸 배를 만들고 군사와 식량을 댄 것은 고려였다. 2차 원정 때는 900척 규모의 배를 짧은 기간에 건조해야 했다. 목재를 베고 배를 짓고 뱃사람을 모으는 부담이 모두 백성에게 돌아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동원은 계속되었다.
원 간섭기의 무게가 가장 무겁게 드러난 대목이 여기다. 왕은 원의 공주와 혼인해 부마국이 되었고, 왕세자는 원에서 자랐다. 관제의 격이 낮춰졌고 공물과 공녀 요구가 이어졌다.
다만 이 관계는 일방적이지만은 않았다. 고려는 왕조와 고유한 제도를 유지했고, 원의 정치에 관여하기도 했다. 러시아 공국들이나 이란처럼 몽골 가문이 직접 다스린 곳과는 다른 형태였다. 부마국이라는 지위는 굴욕이면서 동시에 제국 안에서의 자리이기도 했다.
한편 일본은 두 차례를 막아 냈지만 방어 전쟁이라 나눠 줄 전리품이 없었다. 동원된 무사들에게 보상하지 못한 것이 막부를 흔드는 원인이 된다 — 이긴 쪽도 대가를 치렀다.
제국의 질서에 편입된다는 것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 일이었을까? 그 계산을 당대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