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기록의 나라였고, 그 기록벽이 독도 문제에서 결정적인 유산을 남겼다. 세종실록에 부록으로 실린 전국 지리지 — 세종실록지리지 — 강원도 울진현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현의 정동(正東)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風日淸明 則可望見)." 이 문장이 왜 강력한가. 무릉이 울릉도라는 데는 다툼이 없다. 관건은 우산도의 정체인데, "두 섬이 서로 멀지 않아 맑은 날 바라볼 수 있다"는 관계 서술이 후보를 사실상 하나로 좁혀버린다. 울릉도 주변에서 "맑은 날에만 보이는" 별개의 섬은 독도뿐이기 때문이다 — 죽도(댓섬)나 관음도 같은 부속 섬들은 울릉도 코앞이라 날씨와 무관하게 항상 보인다. "맑으면 보인다"는 조건절은 상당한 거리의, 그러나 가시권 안의 섬 — 87km 밖의 독도를 정확히 가리키는 묘사인 것이다. 국가가 편찬한 공식 지리지가 그 섬을 강원도 울진현 소속으로 기재했다 — 15세기 중반의 일이다. 일본 측 반박도 소개하자. "가망견(可望見)"의 주어를 달리 읽어 "(본토에서) 두 섬이 보인다"로 해석하거나, 우산도를 독도가 아닌 다른 섬 혹은 울릉도의 별칭으로 보는 주장이다. 그러나 본토에서 독도는 보이지 않으므로 전자의 독법은 오히려 궁색해지고, 후자는 뒤이은 조선 문헌들의 용례와 충돌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도 우산도·울릉도를 나란히 실었고(부속 지도 팔도총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 서쪽에 그려져 있다 — 위치가 틀렸다는 점은 일본 측 단골 논거인데, 실측 이전 시대 지도의 위치 오류는 존재 인식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못 된다는 재반박이 따른다), 무엇보다 조선 후기 국가 재정·군정 편람인 만기요람(1808)이 쐐기를 박는다 —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다. 우산은 일본이 말하는 송도(松島)다." 우산도=일본 호칭 송도=독도라는 등식을 조선의 관찬 문헌이 직접 적어놓은 것이다. 한 가지 더 — 조선이 15세기부터 울릉도 주민을 본토로 데려오는 쇄환(공도) 정책을 폈다는 사실을 일본은 "섬을 버린 증거"로 인용한다. 그러나 쇄환은 왜구의 노략과 세금 도피를 막기 위한 주민 관리 정책이었지 영유권 포기가 아니었다 — 조선은 같은 기간에도 정기적으로 관리(수토관)를 보내 섬을 점검했고, 바로 그 수토제도가 다음 편의 주인공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정례화된다. 비워서 관리한 것이지, 버린 것이 아니다. 이 구분은 사료가 스스로 말해준다.
세종실록지리지 (1454) —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문장의 힘
출처
- [기록보존소]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
- [기록보존소] 신증동국여지승람·팔도총도
- [기록보존소] 만기요람 군정편
이 글은 독도, 기록의 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