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백교(白白敎)는 동학 계통의 백도교에서 갈라져 나온 신흥 종교로, 1919년 백도교 교주 전정운이 죽은 뒤 그의 차남 전용해가 이어받아 1920~30년대 경기 가평 일대에서 교세를 넓혔다. 교리는 종말론이었다 — 머지않아 세상이 불과 물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데, 백백교를 믿고 교단이 마련한 피난처로 가야만 살아남아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었다. 식민지의 궁핍과 불안, 낮은 교육 수준이 이런 교리가 파고들 틈을 만들었다.\n\n실체는 조직적 범죄였다. 교단은 신도의 재산을 갈취했고, 내부에는 신도를 감시하는 조직을 두어 이탈하거나 비밀을 알게 된 이들을 살해했다. 1937년 2월 본격 수사가 시작되자, 경찰은 전국 각지의 아지트에서 300구가 넘는 암매장 시신을 발굴했다 — 확인된 것만 300여 구, 희생자는 3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주 전용해는 도주 중 경기 양평 용문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n\n1940년에 시작된 재판에서 간부 다수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다만 일제가 이 사건을 독립운동가 탄압에 쓰던 보안법까지 적용해 처리한 점, 우민화 정책 속에서 사교를 방치·조장한 책임이 식민 당국에도 있었다는 점은 이 사건의 또 다른 그늘이다. 백백교는 "종교의 외피를 쓴 조직범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준 한국 근대 최악의 사교 사건으로 남았다.
백백교 — 수백 명을 암매장한 일제강점기의 사교
출처
- [reference] 백백교
- [언론보도] 일제강점기, 신도 350명의 목숨 앗아간 사이비 종교
이 글은 교주와 권력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