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 — 홍진에 묻힌 분네 이 내 생애 어떠한고

1470 · 태인(전북 정읍)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은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전북 태인으로 내려갔다. 만년에 그곳에서 봄 경치를 노래한 것이 「상춘곡(賞春曲)」이다. 그의 문집 『불우헌집(不憂軒集)』에 전한다.

2음보를 1구로 계산하면 총 79구이고, 3·4조와 4·4조가 주조를 이룬다. 4음보가 길게 이어지는 이 형식이 가사(歌辭)다.

홍진(紅塵)에 뭇친 분네 이 내 생애(生涯) 엇더ᄒᆞᆫ고 / 녯 사ᄅᆞᆷ 풍류(風流)ᄅᆞᆯ 미ᄎᆞᆯ가 ᄆᆞᆺ 미ᄎᆞᆯ가 / 천지간(天地間) 남자(男子) 몸이 날만ᄒᆞᆫ 이 하건마ᄂᆞᆫ / 산림(山林)에 뭇쳐 이셔 지락(至樂)ᄋᆞᆯ ᄆᆞᄅᆞᆯ 것가

현대어로는 이렇다. 속세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이 내 생애가 어떠한가. 옛사람의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나만 한 이가 많건마는, 산림에 묻혀 있어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인가.

첫 구절부터 도발적이다. 속세 사람들을 향해 "내 삶이 어떠냐"고 묻는다. 「한림별곡」의 "이 광경이 어떠합니까"와 같은 화법인데, 대상이 다르다. 한림별곡이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했다면, 상춘곡은 자기가 버린 것을 자랑한다.

【네 단락】 구성은 서사·춘경·상춘·결사 네 단락이다.

1단은 산림에 묻혀 자연을 즐기는 자신을 풍월주인(風月主人)이라 부른다. 바람과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2단은 봄 경치를 완상하며 흥취에 젖는 정황, 3단은 산수를 구경하며 술에 취한 즐거움, 4단은 자연 귀의와 안빈낙도다.

전개 순서를 더 잘게 보면 풍월주인 → 아름다운 봄 경치 → 거닐며 읊조림 → 산수 구경 → 술 마시며 자적함 → 높은 곳에 올라 굽어봄 → 분수를 지키며 즐김으로 이어진다. 집 안에서 시작해 들로 나가고 산에 올랐다가 다시 마음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마지막은 이렇게 닫힌다 — 아모타 백년행락(百年行樂)이 이만ᄒᆞᆫ들 엇지ᄒᆞ리. 백 년의 즐거움이 이만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4음보로 길게 이어지던 노래가 시조 종장 형식으로 마무리되는 전형을 보여준다.

【최초의 가사인가 — 논쟁】 「상춘곡」에는 두 겹의 논쟁이 붙는다.

첫째는 최초 문제다. 조선 초 발생설은 「상춘곡」을 최초의 가사로 보지만, 고려 말 발생설은 나옹화상의 「서왕가」를 최초로 본다. 이두문으로 표기된 「승원가」와 신득청의 「역대전리가」가 발굴되고 나옹화상의 작품이 여럿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가사의 발생 시기를 고려 말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었다. 그렇다면 「상춘곡」은 최초가 아니라 현존하는 가장 이른 사대부 가사가 된다.

둘째는 저자 문제다. 『불우헌집』이 간행된 것은 정조 10년(1786), 정극인이 죽고 300년이 지난 뒤다. 후손 정효목이 주관해 펴냈다. 게다가 실린 가사의 표기가 15세기 어형이 아니라 후대 어형이다. 두음법칙의 영향으로 "이웃"을 "니웃"으로 과도 교정하거나, "디다"·"엇디"를 구개음화 이후 형태인 "지다"·"엇지"로 적은 예가 지적된다.

다만 정극인 저작설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는다. 3·4조 우세의 음수율, 『불우헌집』 체재의 신빙성, 그가 남긴 기(記)·서(序) 등 다른 글과의 조응성이 근거로 제시된다. 표기가 후대 것인 이유는 오랜 세월 전해지다 조선 후기에 채록됐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이는 「관동별곡」이나 조선 전기 시조들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강호가도의 시작】 「상춘곡」이 연 것은 강호가도(江湖歌道)라 불리는 흐름이다. 벼슬을 버리고 자연에 묻혀 사는 삶을 노래하는 사대부 문학의 전통이다.

이 흐름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으로 이어지고, 시조에서는 이황의 「도산십이곡」, 이이의 「고산구곡가」로 나타난다. 조선 사대부 문학의 큰 줄기 하나가 여기서 시작된다.

다만 이 아름다움을 읽을 때 함께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자연으로 물러난 사대부들 상당수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밀려난 것이었다. 정극인은 단종 폐위 때문에 벼슬을 버렸다.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에는 가난을 편안히 여긴다는 뜻과 함께, 그렇게라도 여겨야 했던 사정이 담겨 있다.

【그때 조선은】 정극인이 살았던 시기는 조선의 정치가 가장 격렬하게 흔들리던 때다. 세종의 치세를 지나 문종이 일찍 죽고, 계유정난(1453)으로 수양대군이 실권을 잡았으며, 단종이 폐위되고(1455) 이듬해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사람이 많았다. 생육신으로 불리는 김시습·원호·이맹전 등이 그렇고, 정극인도 그 흐름 안에 있다. 이후 성종대에 사림이 등용되며 이들의 절의는 재평가된다.

태인은 지금의 전북 정읍이다. 공교롭게도 백제의 「정읍사」가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다. 천 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땅에서 장사꾼 아내의 노래와 낙향한 선비의 노래가 나온 셈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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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전기 문학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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