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단체의 역사를 늘어놓으면 이름의 목록이 된다. 일진회, 대정친목회, 국민협회, 각파유지연맹, 애국금차회,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문인보국회. 그런데 이 목록을 연도순으로 다시 세우면 목록이 아니라 구조가 보인다 — 친일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세 번 바뀐 것이다.
첫 번째 얼굴은 병탄 협력이다(1904~1910). 러일전쟁의 포성과 함께 등장한 일진회는 "시정 개선"을 내걸고 실제로는 병합을 청원했다. 나라가 아직 있던 시절, 나라를 넘기는 데 협력한 단체다. 두 번째 얼굴은 통치 협력이다(1910~1937). 나라가 사라진 뒤에는 청원할 병합이 없다. 대신 대정친목회는 "친목"의 이름으로 통치 순응을 연구했고, 국민협회는 병합을 기정사실로 놓고 참정권을 청원했으며, 상애회는 주먹으로 조선인 노동자를 통제했다. 세 번째 얼굴은 전쟁 동원이다(1937~1945). 중일전쟁 이후 친일은 더 이상 "단체에 가입하는 일"이 아니었다 —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애국반이 골목마다 들어서면서, 일상 전체가 동원 체제에 편입됐다. 금비녀를 뽑아 바치는 여성 단체가 만들어졌고, 문인 1천 명이 "황도문학"을 선언했다.
이 시리즈는 그 세 얼굴을 확인된 날짜와 이름으로만 따라간다. 낙인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조직과 제도와 인맥이 협력을 만들었는지, 그 구조를 보기 위해서다 — 실제로 세 시기를 한 사람이 관통한다. 1904년 일진회 평의원이었던 윤갑병은 1925년 국민협회 회장이 되고, 1938년 대동일진회 회장이 된다. 단체는 바뀌어도 인맥은 이어졌다.
같은 시기를 다룬 항일무장단체 계보가 "독립군은 하나가 아니었다"를 보여준다면, 이 시리즈는 그 거울상이다. 친일도 하나가 아니었다 — 그리고 형태를 바꿔가며 마지막 날까지 작동했다. 협력이 세 번 얼굴을 바꾸는 동안, 그것을 가능하게 한 구조는 무엇이었을까?